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81

<자산어보> - 힘이 센 것과 배워야 할 것 이준익, (2019) ※ 스포 주의 배움 영화의 주제를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나는 이 영화를 ‘배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의 키워드를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관계는 약전과 창대, 스승과 제자다. 두 사람 모두 열렬히 배우고 싶어한다. 세상을 알아가는 답을, 창대는 성리학을 배우면서 찾으려 하고, 약전은 사물을 탐구하며 찾으려고 한다.​ 영화는 1801년,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가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가는 데서 시작한다. 정약전과 그 형제들은 천주교를 믿어 조선의 성리학적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었다. 오래전 한국사 시간에 배운,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대한 내용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정약전이 창대에게 세상에는 시를 짓는 것과 한자.. 2021. 5. 8.
<중경삼림重慶森林> - 무단침입과 사랑의 형상 왕가위, (1994) 임청하, 양조위, 왕페이, 금성무 ​​​ ※ 스포 주의 ​ ​ ​ ​ , 무단침입과 사랑의 형상 ​​ 리마스터링 재개봉으로 극장에서 관람했다. 를 빼고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이걸로 네 번째다. ​ 왕가위 영화를 하나하나 보면서 조금씩 팬심이 생기던 중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와 함께 왕가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을 관람했고, ​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친구가 내뱉은 첫 평가는 "이 ㅈ같은 영화 이제야 끝나네"였다. ​ 경찰번호 663(양조위) ​ 은 두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 첫 번째 에피소드는 경찰 번호 223 하지무(금성무)와 금발 가발을 쓴 여자(임청하)의 이야기다. 이별한 지 딱 한달째 되는 5월 1일이 생일인 하지무는 그 한달 동안 연인 메이가 다시 돌.. 2021. 5. 8.
<미나리> - 낯선 땅에서 싹틔운 날 것 ​정이삭, (2020) ​ 큰 충격이나 강한 자극은 없지만 잔잔하게 좋은 영화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냥 ‘좋은 영화’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생각했다. 무리해서 강한 감동을 주려다가는 눈물은 나지만 머리로는 욕하는 신파가 될 수도 있고, 무리해서 강한 충격을 주려다가는 어딘가 어색하고 허술한 점이 보이기 쉬울 테니까. 게다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크게 불만이라거나 불편했던 점이 걸리지 않고, 음 그냥 좋은 영화였다, 하기는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닌가. 지금까지 본 많은 영화의 끝에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막연하게 떠올려보며 생각했다.​ 에서 좋았던 점은 그 잔잔함 속에서 차분히 쌓아가는 일상과 갈등의 겹, 그리고 80년대 미국과 한국의 문화가 섞이고 대비되는 와중에 형성되는 입체감.. 2021. 5. 8.
2020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 아이틴즈/젊은이의 양지/우리집 1. 아이틴즈 2020 SIWFF 아이틴즈 상영작 (2020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홈페이지) 1) 류완희, 오해린, 허지은 2) 이유진 3) 김해은 4) 박혜빈 5) 전서영 6) 김소진 ​ 아이틴즈는 국내 십대 여성 감독이 연출한 단편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특별섹션이다. 올해 아이틴즈 섹션에는 아이돌 팬덤 문화, 학업, 가족, 성폭력 트라우마, 성차별 등의 주제를 십대 청소년의 눈으로 본 세계를 영화로 해석해 낸 6편의 작품이 모였고, 이 작품들은 여성적인 것과 여성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이 6편의 십대 감독들이 연출한 영화들은(때때로 가부장적 가치가 결정하기도 하는) 계몽주의 적인 '페미니스트' 주제보다는 자신의 공간과 관계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여성적인 .. 2021. 5. 8.
편혜영 『홀』- 가족, 복수, 장애 편혜영, 『홀』, 문학과지성사, 2019 가족 ​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잔인해. 어쨌든 서서히 죽이는 거잖아?”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잔인하지 않냐고 묻는 엄마에게 “그래도 『미나』에 비하면...”이라고 답했지만, 사실 엄마 말대로 참 잔인한 소설이다. 김사과작가의 『미나』는 한 사회의 무의식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느낌이라면 『홀』은 너무 현실적이고 사실적이어서 잔인하다. 현실에서 사지를 움직일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이 누워 어떤 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해 생을 사는 누군가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들, 나는 아마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알 수 없는 채로 현실에서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점이 가장 잔인하다. 오기와 장모의 관계는 일단 ‘가족’.. 2021. 5. 8.
백수린「흑설탕 캔디」- 빨간 망토 할머니의 흑설탕 캔디 백수린, 「흑설탕 캔디」, 『여름의 빌라』, 문학동네, 2020 빨간 망토 할머니의 흑설탕 캔디 - 백수린, 「흑설탕 캔디」(2020) 할머니, 파리에 가다 백육십 센티미터의 키에 사십구 킬로그램 내외의 체중을 수십 년째 유지하고 가지런한 백발의 단발머리를 고수하던 나의 할머니. 할머니가 동년배의 다른 할머니들과 다르다는 점은 어린 시절 나를 늘 우쭐하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일본어에 매우 능숙했고, 계란말이와 계란찜을 일본식으로 달짝지근하게 만들었으며, 를 영어로 부를 줄 알았다. (176)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피아노 연주에 능숙하고 영어와 일본어를 구사하는 가지런한 백단발의 할머니. 다른 자매들과 달리 부모를 설득해 대학에 진학하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여자”(175쪽)이란 소리를 듣지만,.. 2021. 5. 8.
<패왕별희覇王別姬> - (3) 누가 검을 움직였는가 첸 카이거, (1993) 이전 글: [영화] - - (1) 주요 등장인물 분석: 데이, 샬로, 주샨 [영화] - - (2) 데이와 주샨, 아이와 어머니 - (2) 데이와 주샨, 아이와 어머니 ▶ 데이와 주샨 - 아이 패왕의 연인 우희, 샬로의 연인 주샨. 경극이 곧 삶이기에 평생 패왕/샬로에게 다른 반려가 생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던 데이 때문에, 두 사람은 샬로를 두고 연적 관계를 sweetwritingpotato.tistory.com - (1) 주요 등장인물 분석: 데이, 샬로, 주샨 첸 카이거, (1993) ※ 스포 주의 ▶ 두지/청데이 (장국영) 이 강렬하게 매운 비극 서사의 주인공. 데이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많은 인물들이 비극의 주인공이지만, 그 중에서 sweetwritingpotato.tis.. 2021. 5. 8.
<패왕별희覇王別姬> - (2) 데이와 주샨, 아이와 어머니 첸 카이거, (1993) 이전 글: [영화] - - (1) 주요 등장인물 분석: 데이, 샬로, 주샨 - (1) 주요 등장인물 분석: 데이, 샬로, 주샨 첸 카이거, (1993) ※ 스포 주의 ▶ 두지/청데이 (장국영) 이 강렬하게 매운 비극 서사의 주인공. 데이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많은 인물들이 비극의 주인공이지만, 그 중에서 sweetwritingpotato.tistory.com ※ 스포 주의 ▶ 데이와 주샨 - 아이 패왕의 연인 우희, 샬로의 연인 주샨. 경극이 곧 삶이기에 평생 패왕/샬로에게 다른 반려가 생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던 데이 때문에, 두 사람은 샬로를 두고 연적 관계를 형성하며 대립한다. 주샨이 샬로와 미래를 함께하기로 결심하며 극장을 나설 때, 데이와 샬로는 무대 위에서 이별을 노래.. 2021. 5. 8.
<패왕별희覇王別姬> - (1) 주요 등장인물 분석: 데이, 샬로, 주샨 첸 카이거, (1993) ※ 스포 주의 ▶ 두지/청데이 (장국영) 이 강렬하게 매운 비극 서사의 주인공. 데이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많은 인물들이 비극의 주인공이지만, 그 중에서도 데이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경극’이고, 데이는 다른 누구보다도 경극에 동화되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데이는 샬로와 달리 자신의 내면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을 철저히 분리하지 못한다. 무대에 서기 위해 그의 ‘진짜’ 손가락을 하나 절단해야 했던 그 시작이 잘 보여주듯, 데이가 무대에 서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그 역할에 맞춰 깎아가는 것이다. 걸음걸이, 행동, 목소리 등 그를 이루는 모든 것들을. 아편을 하는 데이와 고운 목소리를 내는 우희가 공존할 수 없다면, 남성인 데이와 여성.. 2021.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