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별희覇王別姬> - (2) 데이와 주샨, 아이와 어머니

첸 카이거,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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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 (1) 주요 등장인물 분석: 데이, 샬로, 주샨

 

 

※ 스포 주의

 

▶ 데이와 주샨 - 아이

 

패왕의 연인 우희, 샬로의 연인 주샨. 경극이 곧 삶이기에 평생 패왕/샬로에게 다른 반려가 생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던 데이 때문에, 두 사람은 샬로를 두고 연적 관계를 형성하며 대립한다.

주샨이 샬로와 미래를 함께하기로 결심하며 극장을 나설 때, 데이와 샬로는 무대 위에서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이 장면은 무대 위 연인과 무대 아래 연인을 상징적으로 동시에 보여주는 한편, 주샨의 등장으로 데이와 샬로의 동행에 변화가 닥칠 것을 암시한다. 구도상 데이와 주샨은 샬로를 중심에 두고 평행선을 그리며 줄다리기를 하는 듯하지만, 둘이 팽팽하냐고 하면… 사실상 데이가 우세한 듯한 장면은 없다. (나중엔 주샨마저 안쓰러워할 정도로…) 그러니까 주샨이 샬로와 혼인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패왕과 우희가 이별을 말하는 것은 결국 샬로가 데이를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기도 하다.

특히 ‘아이’는 샬로의 두 연인이 그리는 평행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극단 스승과 데이, 샬로 앞에서 주샨이 임신 사실을 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이와 샬로는 극단에서 한 소년을 거둔다. 그 소년은 어린 시절 둘이 함께 극단으로 데려온, 길에 버려져 있던 아기였다. 이렇게, 주샨과 샬로 그리고 데이와 샬로 사이에 아이가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주샨과 샬로의 아이는 곧 유산되고 만다. 극장에 소동이 일어났을 때였다. 경극 같은 거 하지 말고, 데이와 거리를 두고, 통통한 아들 낳아서 평범하고 안전하게 오순도순 살고 싶다던 주샨의 꿈은 경극 공연 중 벌어진 난동으로 무산되었다. 체포된 데이를 내버려 둘 순 없고, 샬로는 다쳤고, 자신은 유산했다. 사산된 아이는 주샨-샬로의 행복한 미래를 부정하는 듯하다.

한편 데이와 샬로의 아이는 경극을 배우며 청년이 된다. 그의 이름은 샤오쓰. 주샨의 임신이 결국 그의 꿈을 좌절시키는 상실로 이어졌듯, 데이의 아이도 데이의 꿈을 좌절시키는 인물이 된다. 데이의 꿈이자 삶은 경극이다. 그리고 샤오쓰는 데이가 경극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다. 공산당의 선전에 매료된 샤오쓰는 구시대의 풍습을 그대로 따르길 거부한다. 그는 노동자가 주인공인 현대극에 관심을 보이고, 경극 스승인 데이를 깍듯하게 모시거나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극의 한 소절, 한 몸짓을 위해 혹독한 훈련과 매질을 견딘 데이에게 현대극은 치밀한 예술성과 전통이 없는 ‘삼류’일 뿐이었다. 게다가 데이가 경극에서 여성의 역할을 맡아왔던 것을 고려하면, 여성이 여성 배역을 맡는 현대극을 인정하는 것은 단순히 미적 기준의 문제뿐 아니라, 그가 무대에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마 데이는 그 변화가 많이 두렵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샤오쓰를 벌주고 때린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후 데이는 우희 역할을 뺏겨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경극 배우란 이유로 광장에 끌려와 비난받는다. 그리고 데이에게서 역할을 빼앗고 데이와 샬로를 구체제의 악습이라며 공격하는 데 앞장선 건 다름 아닌 그들의 아이, 샤오쓰였다.

아이는 곧 그 연인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임신 사실에 들떴다가 ‘통통한 아들’을 제대로 낳아보지도 못하고 잃었던 것처럼, 샬로와 안전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기를 꿈꿨던 주샨은 이후 그 가정과 꿈을 샬로에 의해 부정당하며 죽음을 택한다. 데이-샬로의 경우 아이의 위치는 좀 묘한데, 이는 원래 그들 관계에 아이의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데이와 샬로는 연인이 아니니 주샨처럼 아이가 있는 가정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무대에서도 패왕과 우희 사이 아이 배역은 없다. 그러니까, 데이의 바람처럼 평생 샬로와 패왕별희를 노래하기 위해서라면 아이는 없어야 했던 셈이다. 그래서 샤오쓰는 그들의 아이로 화목하게 자리 잡는 대신, 데이를 내쫓고 우희 자리를 차지하고 서로를 비난하는 샬로와 데이를 구경하는 제3의 독자적인 인물이 되었다. 아니, 되었다기보다는 그런 것으로 드러났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 데이와 주샨 - 어머니

데이가 주샨을 싫어하고 못 받아들이는 건, 그가 샬로를 뺏어갔다고 생각해서도 있지만 어머니를 연상시켰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첫 장면에 나왔듯 데이의 어머니는 홍등가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샬로가 술집에서 노는 게 재미있다며, 너도 가보지 그래? 하고 말했을 때 데이가 화를 냈던 건, 그리고 샬로가 곧바로 사과했던 건, 단순히 데이의 평소 성격이 예민하고 짜증이 많아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예컨대 아편을 피우는 데이가 극단 주인을 시켜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태워버리는 장면이 있다. 평소 우희 분장을 하고 다소곳한 태도를 유지하던 데이가, 아편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으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상실감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데이라는 인물에게 어머니는 가장 오래된 결핍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여섯 손가락이던 자신의 삶(무대에 설 팔자가 아니던 삶)을 경극과 무대로 내몰아 현재의 자신을 만든, 근본적인 결핍으로.

(어머니로 대표되는 데이의 근본적 상실은 그가 무대 위의 자아, 상징계적 존재가 되도록 하는 것)

이 모자 관계는 주샨과 데이 위에 종종 오버랩된다. 대표적으로 아편 금단현상에 괴로워하던 데이가 엄마를 부르며 춥다고 할 때 그를 안타깝게 지켜보며 몸을 감싸주는 주샨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주샨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샬로의 안위였기에 주샨은 샬로가 꼿꼿하게 경극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는 데이와는 다른 길을 가도록 종용한다. 그러니까 데이는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자신이 버려진 삶을 살도록 만든 ‘엄마’를 닮은 사람이 현재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또 자신을 버리라고 하고 있으니.

마지못해 자신의 손으로 샬로에게 패왕의 모자를 씌워주고 무대 뒤에 허망하게 남은 우희에게 연민의 얼굴로 망토를 덮어주는 주샨을 보며, 아마 데이는 망토를 덮어주고 떠난 겨울날의 어머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니 주샨이 미안해하는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었든, 데이가 그 망토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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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