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틴즈
2020 SIWFF 아이틴즈 상영작 (2020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홈페이지)
1) 류완희, 오해린, 허지은 <솜>
2) 이유진 <이사>
3) 김해은 <¹®±úÁü½ºÆ®>
4) 박혜빈 <포도알을 잡아라!>
5) 전서영 <그녀들>
6) 김소진 <공개수업>
아이틴즈는 국내 십대 여성 감독이 연출한 단편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특별섹션이다. 올해 아이틴즈 섹션에는 아이돌 팬덤 문화, 학업, 가족, 성폭력 트라우마, 성차별 등의 주제를 십대 청소년의 눈으로 본 세계를 영화로 해석해 낸 6편의 작품이 모였고, 이 작품들은 여성적인 것과 여성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이 6편의 십대 감독들이 연출한 영화들은(때때로 가부장적 가치가 결정하기도 하는) 계몽주의 적인 '페미니스트' 주제보다는 자신의 공간과 관계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여성적인 것들이 배치된 방식을 영화로 만들어내 여성주의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상영작 가운데 두 편을 선정해 대상과 우수상을 수여한다.
황미요조 / 프로그래머
6편의 단편영화가 각자 개성 있고 주제의식이 뚜렷해서 집중을 깨지 않고 끝까지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아마도 매우 저예산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십대 감독들의 작품이다보니, 기성 영화들에 비해 디테일한 퀄리티가 떨어지는 부분들도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이사>라는 작품에서 가족사진에 찍힌 옷이 인물들이 입고 있던 옷 그대로라는 점이 보인다든지. 그러나, 이런 부분들은 상기한 이유에 따라 충분히 감안하고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예상가능한 단점을 보완하는 각 영화의 장점이 분명했다. <이사>라는 작품은 캐릭터의 평면성과 단순함이 아쉬웠지만, 그만큼 작품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강렬하고 명료해서 줄거리를 뚜렷하게 남기는, 존재감이 분명한 영화였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봤던 영화는 김해은 감독의 <¹®±úÁü½ºÆ®>였다. 유일하게 다큐멘터리 형식이었던 이 영화는 폰카메라로 찍은 건지, 화질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닥 좋지 않은 카메라의 화질이 그대로 드러나는 화면에, 일상적인 감각과 풍경이 그대로 묻어나는 장면들, 엄격하게 통제되지 않은 카메라 무빙을 보고 오히려 이 영화의 다큐멘터리적 성질을 깨달음과 동시에 관심을 갖고 더 몰입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평소에 다큐멘터리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극영화들 사이에 끼어 있던 다큐영화라서 그랬는지 인물들(가족들)의 말하는 방식, 움직이는 방식, 화면에 담기는 모습에서 날 것의 느낌이 나는 게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로 좋았다. 어떤 의미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다큐멘터리와 달리 이 영화는 감독님이 자기 자신과 가족들, 지인들을 상대로 찍은 것이란 점에서 '날 것'이란 느낌이 더 생생히 느껴졌던 게 아닐까 싶다. 레이 초우는 근대 초기 루쉰이 받은 영화적 충격이 영화의 투명성 때문이라고 했다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것 역시 바로 그 투명성으로 인한 충격과 비슷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솔직하게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영화로 담아낸 감독님의 용기가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또 여러 장면들을 얼기설기 편집하여 배치한 구성도 마음에 들었다. 언택트 GV 때 답변을 듣지 못했던 누군가의 질문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미리 시놉시스에 따라 계획해서 촬영한 건지, 촬영하고 나서 편집하며 구성한 건지에 관한 것이었다. 나도 궁금한데, 개인적으로는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실 어느 쪽이든, 일상적 영상의 단편들을 교차시키면서 한 줄기의 작품으로 새로 조립했다는 점에서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들은, 당장 답을 내놓기에는 근본적이고 거대한 것들이다. 여성과 남성은 어떻게 구분될까? 우리는 염색체를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으면서, 어떻게 염색체에 따라 성별이 나뉜다고 확신하고 있을까? 여성의 삶과 남성의 삶은 왜 다르고, 또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당연한 듯 다른 채로 지속될까? 그래서 나는 이 짧은 다큐멘터리가 질문을 던지는 데 온 힘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선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대답의 방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내 염색체가 어떻게 생겼을지 좀 궁금해졌다. 설령 의사 선생님이 남의 염색체 사진을 보여주면서 내 꺼라고 해도 난 절대 눈치 못 채겠지만...
아이틴즈 대상은 <포도알을 잡아라!>, 우수상은 <¹®±úÁü½ºÆ®>이 수상했다고 한다. 십대 심사위원단이 선정했다는데, 그래서 <포도알을 잡아라!>가 대상을 수상했다는 점이 더 신기하고 재미있다. 아이틴즈 관람을 마치고 친구들이랑 소감을 얘기하면서 <포도알을 잡아라!>는 웹드라마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유쾌하고 명확한 소재, 이해가 쉽게 잘 갈무리한 영상, 짧고 깔끔한 기승전결 전개, 인물을 중심으로 담은 화면 등이 그런 느낌을 낸 것 같다. 많은 여성 심사위원들이 <포도알을 잡아라!>를 선택했다는 건, 팬덤과 티케팅 문화에 대한 공감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십대 관람객들이 (그 윗세대에 비해) 그런 영상 문법에 보다 더 익숙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틴즈 상영이 끝난 뒤에는 갑자기 영화제 스탭들이 뭔가를 부지런히 설치하더니 감독님들과의 ZOOM GV가 열렸다. 사실 GV가 있는지는 몰랐다. 그리고 줌으로 하는 줄도 몰랐다. 어쨌든 감독님들과 인사를 했는데, 그 순간이 감독님들 역시 좀 민망했는지 누군가 "쪽팔려" 라고 소리쳤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삼 진짜 신기한 GV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 및 몇 가지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다들 말씀을 조리 있게 잘 하셨고 영화를 만들면서 많이 고민하셨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종종 소위 '교과서 작품'이라고 불리는 문학들 대부분이 어른들이 어른들의 관점에서, 어른들의 관심사에 대한 작품이고, 그에 주석을 다는 비평가들 역시 비슷한 입장의 어른들임에도 그것들이 어린이, 청소년의 교과서에 실린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생각했다. 물론 그런 작품들과 그것들을 의미화하는 과정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른들'이 그 작품을 그렇게 의미화하는 맥락이 낯선 이들에게 단순히 작품과 그 (비평가들이 부여한) 의미를 '이해해라' '외워라'하는 것이 좀 무책임하고 강압적이지 않나 싶다. 그래서 나는 아이틴즈 기획이 반갑고, 올해 아이틴즈를 보게 되어서 기뻤다. 청소년을 위한 작품을 청소년이 만들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2. 신수원, <젊은이의 양지>(2019)
제 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 영화에 대한 키워드로 '생존/하청/콜센터/헬조선'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단어 단어마다 중압감, 그리고 어떤 강렬함이 느껴진다. 영화도 딱 그런 느낌이었다. '헬조선' 사회의 무겁고 중요한 소재들을 다루는데, 그걸 영화적으로 효과적인 방식으로 그려내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힘 준 것 같은 장면들이나 대사들에서 실제로 힘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힘이 과한 것 같다.
일단, 위 스틸컷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의 핵심적 관계축은 콜센터 지점장 세연과 실습생 준인데, 이 관계가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애초에 실습장과 센터장이 직속관계도 아닌데, 수금하러 가는 준이 굳이 전화를 한다면 센터장이 아니라 직속 상사인 팀장에게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해서 준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 센터장이 아니라 팀장이었다면, 팀장은 콜센터 전체 전원을 꺼버리는 권한이 없었을 테니까 중요한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세연과 준은 서사적 필요성에 의해 뜬금없고 부자연스러운 친밀감과 교류를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주축이 되는 인물들 간 개연성이 어색하게 느껴지다 보니 영화 전개에 깊이 몰입하기 어려웠다.
준의 새파란 모자 역시 굳이 고집해야 했을까 싶은 장치 중 하나였다. 순수하고 아이 같은 내면을 가지고 있는, 꿈을 품고 있는 고등학생이란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한 아이템 같지만(+강물에 모자가 떠있는 장면을 위한 오브제), 너무 눈에 띄고 전형적인 상징으로 보인다. 물론 전형적인 캐릭터가 메시지를 간결하고 명쾌하게 전달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 그 메시지 전달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그런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좀 덜 강조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 함께 관람한 친구들은 세연의 딸이 철학과 출신이라는 설정도 문사철 출신 실업자의 전형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 같다고 했는데, 이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 외에 강물로 들어가는 준이, 그 장면을 스스로 촬영할 정도로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면서 컵라면을 든 가방을 멘 채였다는 부분도 (아마 현실의 사건을 연상시키려는 장치였겠지만) 한 편의 영화 속에서는 어색한 장면이었다. 계속해서 '나도 사람이다'라는 가사를 반복하는 노래 가사도... 주제의식을 최대한 투명하고 직접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주제의식과 이미지적 전달에 집중한 만큼, 몇몇 힘있는 장면들은 꽤 강렬한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 가장 좋았던 장면은 세연의 딸이 합숙면접에서 도망친 뒤 검은 폴라티를 끌어올려 얼굴을 가리고 우는 장면이었다. 얼굴을 가리는 다급한 손길과 검은 옷으로 가려진 이목구비가 서럽게 우는 다른 어떤 표정보다 더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내면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장면이 될 수 있구나, 생각했다.
- 콜센터 일이 힘들더라도 인생실습이라고 생각하라며 준을 격려했던 세연이, 본인 딸이 콜센터에서 일해보겠다니까 버럭 화를 내며 절대 안 된다고, 넌 더 좋은 곳에 가야한다고 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신선하거나 놀라운 전개는 아니어도 세연이란 캐릭터의 불편한 솔직함을 목격한 부분이었다.
- 퇴근 후 원청 임원과의 술자리에서 세연이 샀던 낙지가 보드카에 담가져 불에 타던 장면도, 확실히 강렬했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거 보라며 낄낄대던 그 임원들의 비웃는 소리와 그걸 불편하게 바라보는 세연의 표정으로 이 영화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3. 윤가은, <우리집>(2019)
2020.9.15 관람
이 년 전쯤에,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을 봤다. 그 기억이 정말 좋아서 <우리집>도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야 보게 되었는데, 뭐랄까... 비슷한 듯 많이 다른 영화였다.
내게는 작은 감동을 주었던 요소 중 하나가 아이들의 대화였다. “네가 먼저 웃었잖아.” “네가 먼저 웃었거든?” “아니야” “맞아” “아니야” “맞아” “아니거든?” “맞거든?” 이런 식으로 반복하며 주고받는 대화가 종종 등장한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장면들이 평범하지만 낯설었던 이유는 그게 그 나이대 아이들이 말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초등학생이란, 내가 그 시기를 지나고 난 뒤에 한 번도 관심을 가지거나 지켜본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 혹은 다른 어른의 시선으로 연출된 ‘아이’가 아니라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드러나는 초등학생이 오랜만이었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만약 내가 대본을 썼다면 없었을, 대사도 어조도 단순하고 반복적인 어떻게 보면 군더더기에 가까운 요소들이다. 그렇지만 모든 생활감과 생동감이 담긴 부분이기도 하다. 이걸 듣고서야 나는 그 나이에 내가 어떻게 말했는지를 떠올렸고 영화에 몰입하게 되었다.
<우리들> 감상문 일부
원래 나는 메이킹 영상이나 비하인드 같은 것들은 잘 찾아보지 않는데, <우리들>은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메이킹 영상을 보는 것이 좋았다. <우리들>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어린 주인공들의 서사라는 점과 동시에 배우들의 연기가 주로 상황극이란 방식으로 유도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이번 영화에서는 대본이 좀 더 중요하게 다뤄졌던 것 같다. 일단 그런 느낌을 조금이라도 받자,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도 '천진한 아이들에 대한 환상'을 만족시키려 연출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화 자체는 관객들이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은데, 정작 나는 이런 이유로 거리감이 느껴지니까 보는 내내 약간 마음에 무언가 걸리는 기분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한 이해와 몰입이 깨졌던 부분은 바닷가에서 '우리집'을 부수던 장면과 마지막 하나 가족의 식사 장면이었다. 여정 내내 소중하게 들고 온 모형집을 바닷가에서 하나와 유미가 밟아서 망가뜨리던 장면은 서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이었던 것 같은데 그만큼 충분히 표현된 건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그 상황에서 내가 유진이었다면 그렇게 아끼던 모형집을 언니들이 (심지어 조금 미소를 지으면서) 짓밟는 걸 보고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는데(집을 떠날 때 모형집을 들고 나왔던 인물이 유진이었다) 하나와 유미의 행동에 대한 유진의 반응이 생략되어 있고 이후 하나와 유미가 앉아서 울기 시작하자 조신히 그 옆에서 따라 우는 게 부자연스러웠다. 모형 '우리집'이 망가지는 장면과 망가뜨리는 행동 자체를 강조하기 위해 유진이라는 캐릭터가 도구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하나를 찾아 헤매던 가족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식사를 차려둔 하나가 '밥 먹자'고 하자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부분도 장면을 위해 인물들이 억지로 행동하고 있는 느낌이란 점에서 비슷했다. 게다가 이 부분은 가족 구성원 중에서 가장 어린 아이인 하나의 상황을 생각해봤을 때 비현실적이란 느낌을 받지 않기는 어려워보인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남았던 가장 강한 느낌이 모호함이었던 것 같다. 환상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이야기도 아니고, 현실적인 묘사가 섬세한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보니 전작이랑 비교하면서 아쉬운 점부터 늘어놓게 되었는데, 기본적으로 <우리들>에서도 돋보였던 영화의 따뜻한 색감이나 유년시절의 감정 등 나름의 감동을 주는 장점들도 분명히 있었다. 어쩌면 <우리들>보다 <우리집>이 더 어색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이번 영화가 '가족'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일지도 모르겠다. '친구' 이야기였던 <우리들>에는 동갑내기 인물들이 주인공이었고 그들 사이의 교류와 감정선이 핵심이었다. 그에 비해 <우리집>의 인물들은 연령대나 관계가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하나와 유미 사이에 나이 차가 존재하는 것도 <우리들>의 선과 지아와 달리 친구보다는 가족 같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복잡한 인물들과 사건을 조율하기 위해 또래배우들의 합보다는 스토리의 존재감이 좀 더 강해진 게 아닐까 싶다.
같이 영화를 본 친구들은, 그럼에도 유년시절의 이야기는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집.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The House of Us'다. Home이 아니라 House라는 점에서 하나, 유미, 유진의 모형집을 강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집(house)'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하게 되었다. 어른 입장에서 집은 일종의 재산으로 여겨질 수 있다. 내 명의로 소유할 수 있는 것. 그럼 그 집은 '내 집'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조차도 '내 집'일 수 없다. 아이에게 집은 늘 '우리'라는 이름에 기대야 가질 수 있는 장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즉 가족의 불화는 어린 하나에게 자신의 세계가 흔들리는 정도의 큰 일이란 걸, 제목을 곱씹으며 새삼 생각했다.
사실 이번 감상을 적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미 성인이 된 내가 '아이다움'이 어쩌구 저쩌구하는 것 역시 어떤 왜곡된 상을 기준으로 잡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어른이 보는 어린 아이의 이야기는, 정말 어린이의 이야기일까? 어린이는 소재일 뿐, 어른이 만들고 어른이 보는 어른만의 것에 불과할까봐 계속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어린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할 창구는 정말 없는 것 같다. 비슷한 이유로 위 아이틴즈 기획을 반겼던 것이기도 하다.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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