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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9

<다섯 번째 흉추> - 불확정, 미지, 생명, 공포 2023.08.04. 에무시네마 별빛 영화제2002년 겨울의 어느 날, 한 연인이 이사를 하며 방에 들여둔 매트리스.매트리스에는 연인의 시간이 쌓이고 먼지와 음식물과 더러운 것들도 쌓이고 그러다 곰팡이가 피어난다.그러던 어느 날 연인이 헤어진다. 여자가 저주처럼 읊조리는 '죽어'라는 말을, 매트리스 곰팡이 속에서 태어난 '무언가'가 배운다.그 '무언가'는 "죽어"라는 말을 반복하며 인간의 척추뼈를 뽑아 자신의 몸에 넣는다.흉측하고 위험하고 아무도 반기지 않는 그 '무언가'는 이렇게 공포물의 괴물처럼 나타난다.다만 여타 공포물과 다른 점은, 이 영화는 '괴물'에게 공격당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 '괴물'의 삶을 따라간다는 것이다.아무도 '무언가'를 반기지는 않지만, 매트리스는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무언가'는 .. 2023. 8. 8.
<엑시트> - 청년들의 현실 재난 영화 엑시트(2019) 장르: 코미디, 재난, 액션 감독: 이상근 주연: 조정석(이용남 역), 윤아(정의주 역) 길을 감춰버리는 안개 같은 유독가스. 그 가스로 뒤덮인 도시에서 가족들을 먼저 대피시키며 용남은 이렇게 외친다. "금방 따라갈게!" 성대한 칠순 잔치를 치르는 부모님, 잘 나가는 사촌, 승진이 빠른 처형, 아직 어린 사촌 동생들. 그 사이에서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용남은 누나의 말대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처지다. 그러니까 용남의 상황을 고려하면, 금방 따라가겠다는 그의 말은 지금은 보잘것없고 남들보다 뒤처진 처지지만 곧 그들과 함께 어울려도 부끄럽지 않은 사회인이 되겠다는 취업준비생의 절박한 외침으로도 들리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 에서 용남과 의주의 재난 탈출기는 2030 청년들의 사회적.. 2022. 5. 13.
<인터스텔라> - 멸망 속에서 길을 찾는다면 인터스텔라(2014)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주연 매튜 맥커너히(쿠퍼 역), 앤 해서웨이(브랜드 역), 마이클 케인(브랜드 교수 역), 제시카 차스테인(머피 역) ※ 스포주의 ※ 개봉 당시 극장에서 조금 졸면서 별 감흥 없이 보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제 개봉한 지 8년이 흘렀다. 다시 본 인터스텔라는 정말 재미있었다. 예전엔 별로 공감되지 않던 부분들에서 감동받는 스스로를 보며 그 사이에 나이가 들긴 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1. '종족' 인간 인간이 만든, 인간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매일 다른 인간들과 부대끼면서 개체가 아닌 종족으로서 인간을 생각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인류 멸망 앞에서 인간이라는 ‘종족’으로 돌아가는 의 인물들이 흥미로웠다. 병충해로 식량난은 점점 더 나빠질.. 2022. 4. 1.
<안나 카레리나> - 안나는 왜? 조 라이트, 안나 카레리나(2012) 키이라 나이틀리, 주드 로, 애런 존슨 안나는 왜? - 흰며들었나 - 죽어야 했을까 - 영어로 말하나 색과 연출 거의 계속 흰색 옷만 입는 브론스키 백작을 보고 친구가 농담처럼 나중에 안나도 흰며드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설마 했던 그 가설이 정답이었던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흰며듦’ 이론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영화 속에는 유독 눈에 띄는 색상이 있다. 영화 초반 안나는 검은 옷을 입었고, 이 옷은 흰색으로 차려입은 브론스키 백작과 키티(당시 흰며듦 상태)와 대조를 이룬다. 그러다 떠나려는 브론스키를 붙잡으며 그와의 사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는 붉은 드레스를 입는다. 그 뒤로 그와 함께할 때는 흰색의 옷을 입다가, 영화의 마지막에 그를 떠날 때는 브론스키와의 사랑.. 2021. 7. 6.
<블랙스완> - 1인칭 주인공 시점의 공포 영화 대런 아로노프스키, 블랙스완(2010) 호러 or 스릴러? 나는 호러 영화를 싫어한다. 호러는 서사적 전개가 긴박하고 소름 돋는 것과는 좀 다르다. 난 서스펜스는 좋은데, 시청각적 자극으로 겁주는 건 싫다. 그래서 공포 영화는 원래 안 본다. 도 포스터가 공포 영화 같아 보여서 원래는 볼 생각도 없었는데, 막상 찾아보니 드라마, 스릴러 장르로 포함되길래 괜찮겠지 생각하며 보게 되었다. 하, 정말... 너무 힘들었다. 넷플파티로 친구들과 같이 보던 중만 아니었으면 포기했을 거다. 대체 왜 (1919)도 호러 영화의 맥으로 포함하면서 (2010)은 호러라고 부르지 않는 거지? 그 모든 섬뜩한 이미지들이 ‘환각’이라는 자연(과학)적 현상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어서? 스릴러와 호러 장르의 경.. 2021. 7. 5.
<라이프 오브 파이> - Believe It Or Not 이안, (2012) 둘 이상을 믿는다는 것 파이는 힌두교도인 동시에 기독교도이고 이슬람교도이기도 하다. 하느님 유일신만을 섬기고, 그 외 다른 것들을 믿는 것은 우상숭배로 금기시하는 기독교적 사고관이 익숙한 나로서는 다신교적 사고관에서 출발한 개방적인 신앙의 자세가 흥미로웠다. 파이의 종교관에서 신은, 암흑 같은 세상에 내려온 한 줄기 빛이라기보단 어디에나 있는 원주율 같은 것처럼 보인다. 각기 다른 원이 모두 같은 원주율을 가지고 있듯, 다양한 종교도 신의 이름이나 교리는 다를지언정 모순되지는 않는다고, 파이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전부 다 믿는 것은 전부 믿지 않는 것과 같다는 파이 아버지의 말은 파이의 신앙을 설명하진 못한다. 그건 진리는 오로지 하나의 표현만을 갖는다는 아버지의 믿음이 .. 2021. 7. 5.
<태어나길 잘했어> - 내가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될 테니 2021.05.27 에무시네마 1인가구영상토크쇼 1부 두번째 영화 - 최진영 감독 최진영, (2020) 가장 약하고 상처받았던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삼십 대의 춘희는 번개를 맞고 기절한 어느 날부터 십 대의 춘희를 보기 시작한다. 춘희 앞에 나타난 춘희는 갑작스럽게 부모님을 잃고 외삼촌 집에 살며 눈치를 보던 춘희다. 일어설 수도 없는 다락방에서 살고, 가족 외식에 끼지 못해 라면을 먹고, 다한증 때문에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구박을 받다가 스스로 축축한 손을 불구덩이에 집어넣던 그 시절의. 아버지에게 맞았던 어린 시절 트라우마 때문에 말을 더듬는 주황은 그때의 자신을 만난다면 뭐라고 하고 싶냐는 춘희의 말에 그냥 한번 안아주고 싶다고 대답한다. 그때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고. 설리번 선생님 같은 사람이... 2021. 6. 17.
<속삭임(murmur)> - 아주 많은 동물과 인간 하나 2021.05.27.목요일 에무시네마 1인가구영상토크쇼 1부는 영화 상영으로, 2부는 토크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상영했던 영화는 헤더 영 감독의 . (2019) 헤더 영 알콜중독자 도나는 동물 보호소에서 사회 봉사를 하다가 안락사가 예정된 늙은 개 찰리를 집으로 데려온다. 딸마저 자신의 연락을 피하는 상황에서 도나는 찰리에게서 큰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도나의 결핍감은 찰리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던 건지, 도나는 더 많은 동물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시작한다. 보다 못한 동물 보호소장이 감당할 능력이 없으면서 더 이상 입양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도나는 멈추지 못하고 보호소 밖에서 개인적으로 개, 고양이, 물고기, 햄스터 등을 찾아 입양해온다. 결국 도나의 집은 엉망으로 더러워진 채 제대로 관.. 2021. 6. 17.
<재춘언니> - 투쟁하는 사람의 13년 이수정, , 2020, 97min 174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2021년 5월 24일 오후 7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이수정 감독과 홍은애 평론가가 함께하는 GV 시간이 있었다. 흑백에서 컬러로의 전환이 어떤 의미인지, ‘재춘 언니’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지, 임재춘이란 인물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뽑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는지, 왜 함께 니체를 읽기로 했는지 같은 질문들이 나왔다. 흑백 투쟁이 끝나기까지의 시간을 모두 흑백으로 담은 것은 ‘그 시간이 아저씨들에게 유예기간 같은 거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감독님은 그 시간이 반드시 흑백의 암울한 기간이라고 생각하시지만은 않는 듯했지만, 적어도 투쟁하시는 노동자분들께서는 가까워지지 않는 목표를 .. 2021.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