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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5

김혜진『어비』- 21세기, 노동하는 가장자리의 사람들 김혜진, 『어비』, 민음사, 2016 목차 어비 아웃포커스 한밤의 산행 치킨 런 쿵후하는 자세 광장 근처 줄넘기 와와의 문 비눗방울맨 그래도 다른 사람들처럼 별풍선을 선물할 생각은 안 했다. 이런 건 일이 아니고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건 반칙이고. 그보다 내가 아는 어비는 이런 걸로 뭘 해 보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비는 열심히 일할 줄 알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 아닌가. (24-25, 어비) 그러니까 거긴 처음부터 엄마의 자리 같았다. 회사의 중심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자리. 그래서 누군가 툭 치면 단 몇 걸음 만에 회사를 벗어나게 될지도 몰랐다. 문득 저 시커먼 창 너머로 사람들이 엄마를 내려다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려다보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을 .. 2021. 5. 25.
허먼 멜빌『모비딕Moby Dick』- 고래를 해부하며 인간을 가르치는 허먼 멜빌, 『모비딕Moby Dick』, 1851 (번역서: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모비딕』, 작가정신, 2011) 책날개에는 허먼 멜빌을 소개하는 이런 문장이 있다. 근대적 합리성을 거부하는 비판적 사고, 풍부한 상징성을 작품에 담았던 그는 금세기에 와서야 단순한 해양모험담 작가가 아닌 인간과 인생에 대해 비극적 통찰을 한 상징주의 철학적 작가로 평가받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읽기 전엔 조금 의심했다. 해양모험담에 금세기 비평가/독자들이 의미 부여를 많이 해서 추켜올려주는 건 아닌지.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상징적으로 읽힐 만한 실마리가 아주 많은 책이다. 난 아직도 예전에 한 교수님이 좀 비꼬는 말투로 같은 작품도 요새 같았으면 환경보호, 동물권 등으로 비판받았을 거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2021. 5. 20.
정세랑『지구에서 한아뿐』- 우리의 동행을 여행으로 만드는 것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 난다, 2019 ※ 스포 주의 ※ ​ ​ ​ ​​ 흔하지 않지만 어떤 사랑은 항상성을 가지고, 요동치지 않고, 요철도 없이 랄라라 하고 계속되기도 한다. 217 ​ ​ 가끔 책을 추천해달라는 친구들이 있는데, 혹시 다음에 누군가 물어본다면 이 책을 추천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 진짜, 술술 잘 읽힌다. 읽는 속도가 아주 느린 나 같은 사람도 단숨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정말, 정말 사랑스럽다. “항상성을 가지고, 요동치지 않고, 요철도 없이 랄라라” 계속되는 사랑이라고, “우주가 그들을 디자인했다”(216)고 믿는 게, 너무 달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평소 흔히 접하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오히려 신선하고 달콤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인간관계와 인간 사회는 .. 2021. 5. 8.
조지 오웰『동물농장』- 낱장의 현실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도정일 옮김, 민음사 조지 오웰, 「동물농장Animal Farm」​,1945 (번역서: 도정일 옮김, 조지 오웰, 『동물농장』, 민음사, 2004) ​ 마르크스의 이론은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이어지고 레닌 사후에 스탈린이 트로츠키와 대립하다가 독재했다고 했나. 소련 정치사에 대해서는 이 정도밖에 알지 못한다. 그나마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정쟁에 대해서 들어봤기 때문에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과 스노볼이 대립하다가 나폴레옹의 집권으로 이어지는 내용을 보고 이 두 돼지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딱 이 정도로만 소련을 떠올렸던 것 같다. 정말이지 동물들은 존즈가 다시 오는 건 바라지 않았고 일요일 아침에 토의를 벌이는 것이 존즈를 되돌아오게 하는 일이라면 그 토의는 중단되어 마땅할 것이었다. 이제 생.. 2021. 5. 8.
박솔뫼『우리의 사람들』- 선택되지 않은 것들을 셈하는 방식 박솔뫼, 『우리의 사람들』, 창비, 2021 "책의 내용이 굽이돌아가는 모퉁이마다 가능한, 아니 실제로 그렇게 썼을 가능성을 충분히 지닌 또 한권의 책이 무(無) 속으로 버려지고 만 것이다. (중략) 그런데 작가가 글을 써나가면서 하나씩 지워버린 그 책들, 문학의 연옥 속으로 던져버린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그 책들-그리하여 글이 되어 햇빛을 받으며 태어나지는 못하고 만 그 책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셈에 넣어 고려해야 한다. 그 책들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의미를 완전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비평가에게는 유산되고 만 그 책들도 중요성을 갖는 것이다." - 쥘리앙 그라크 ​ ​ 텍스트와 텍스트 삶은 텍스트다. 적어도 이 소설집의 서술자에게 삶이란 분명 그런 것처럼 보인다. 살.. 2021.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