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Natasha, Pierre & the Great Comet of 1812>: 피에르와 나타샤를 중심으로 (홍광호, 정은지, 이충주)
by 끄적고구마2021. 5. 17.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Natasha, Pierre & the Great Comet of 1812>
2021.03.20. (토)~2021.05.30. (일)
유니버설 아트 센터
2021.05.09. 14:00 공연 관람 홍광호(피에르 역), 정은지(나타샤 역), 이충주(아나톨 역), 방진의(엘렌 역) 등
※ 스포 주의
<그레이트 코멧>은 작년에 한번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었던 공연이다. 이번에도 어떻게 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잘 보고 왔다. 진짜 오랜만에 본 뮤지컬!
관람 전,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극불호 리뷰들도 보이길래 걱정도 했고 기대도 덜었다.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게, 애초에 홍광호 배우님 덕분에 관심을 갖게 된 공연이었는데 귀에 꽂히는 매력적인 넘버가 없고 피에르(홍광호 배우님) 비중도 그렇게 크지 않은 데다가 가창력이 돋보이는 노래도 없다는 후기를 봤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 보기엔 아쉬워서 직접 보고 불호라고 해도 이머시브(immersive) 시어터라는 흔치 않은 무대를 구경했다 치자고 합리화하며 관람했다.
그런데 기대치를 낮추고 가서였을까? 나한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막 극장에서 나왔을 때는 그래도 이게 뮤지컬로 만들기에 적합한 내용이었을까 하는 생각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매력적인 넘버가 없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오히려 보면서 좋은 곡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집에 와서 노래도 계속 찾아 듣다 보니 지금은 약간 중독된 건지 다시 보고 싶어졌다. 코로나 시국이 지나고, 관객들도 마음껏 환호성 지르며 호응할 수 있을 때 재연해줬으면 좋겠다. 그때는 가사도 다 익혀가고 노래도 익숙하겠다 더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무대 및 노래에 대해
작곡가 데이브 말로가 ‘일렉트로 팝 오페라’라고 칭한 이 작품은 팝·일렉트로닉·클래식·록·힙합 등 다양한 형태의 넘버를 선보인다. 오케스트라 10명(지휘자 포함)과 로빙 뮤지션(움직이며 악기 연주하는 배우들 총칭) 11명이 펼치는 ‘쉬지 않는 음악’에 흥이 절로 폭발한다.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객석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장면 연출을 생략했다지만, 충분히 가슴 설레는 활력을 주는 작품이다.
피에르가 외치는 “라즈, 드바, 뜨리!”가 좋다. 아나톨이 <The Duel>이랑 <Balaga>에서 “오~오오오~오오오오~”하는 부분 좋다. <The Abduction>에서 피에르가 아나톨의 행복한 앞길을 빌어주는 건배사도. <The Ball>에서 나타샤가 등장하는 부분에 확 바뀌는 멜로디도(사랑에 빠질 것 같은 낭만적인 무도회의 몽롱한 느낌을 표현하면 이런 선율이겠구나 하는 느낌). <No one else>의 피아노 선율도 귀에 낭랑하게 울리고. 노래들이 대체로 다 내 취향에 잘 맞았던 것 같다. 엘렌이 부르는 <Charming>은 처음 듣고도 귀에 박힐 정도로, 모든 넘버 통틀어서 가장 강렬하고 자극적인 노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같이 본 친구는 가사 때문에 별로라고 했다. 길티플레져 유발하는 도발적인 곡이라 멜로디 자체 중독성은 강하다. 엘렌이 더 완급조절 과감하게 하면서 더 치명적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번역이 좀 아쉽다. 서정적인 노래들 가사는 좋은데, 1일1팩, 때찌, 완전 잘생긴 남자 등장, 짜증 폭발 등 좀 재치있게(?) 표현하려고 한 건지 모르겠는 어떤 부분들은 조금... 다른 어휘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레이트 코멧>을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점은 가사가 안 들리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이라서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결의 대사가 계속 화려하게 변주되는 한 곡에 이리저리 들어가 있다 보니 딕션과 음향이 좋지 않으면 알아듣기 어려운데, 음향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거 잘 못 느끼는 나도 1막 노래 듣다가 음향 별로라고 생각했으니까... 가사가 제일 안 들렸던 부분은 이 뮤지컬에서 가장 신나는 <Balaga>! 아주아주 신나는 장면이라 배우님들도 박수를 유도하시는데, 박수치며 듣다 보니까 신은 나는데 가사는 진짜 하나도 안 들렸다. (ㅋㅋㅋ) 그래도 가사 몰라도 이야기 진행에 무리가 없는 부분이긴 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그냥 마부 발라가에 대한 소소한 소개였다.
그리고 성스루가 특히 어색하게 느껴진 부분이 좀 있었는데, 장면에 따라 무대가 변하지 않았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추상적인 무대 공간에서 여러 상황을 표현하다 보니 "피에르는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갔다" 이런 내용까지 다 말(노래)로 전달하더라. 무대가 관객석(코멧석)과 섞여 있는 독특한 형태이다 보니 무대 변형이 어려웠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넓은 무대를 이렇다 할 큰 변화 없이 계속 사용하는 게 조금은 아쉬웠다. 그 공간을 다른 장치나 소품, 화려한 효과로 채우는 대신 계속 배우님들이 뛰어다니시면서 메꾸는 느낌이었고... 아마 모든 관객들이 다 느꼈을 거 같은데 배우님들이 진짜 너무 고생하셨고 대단하시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공연이다. 땀 흘리시면서 계속 뛰고 노래하시는데 앉아있는 게 왠지 죄송할 지경이었다. 혹시 아예 콘서트처럼 입석 티켓 파는 건 어떠신지...
또 무대가 넓다 보니 조명을 많이 사용해도 배우님들이 이동하실 때 빛과 어둠 사이를 지나다니시더라. 무대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효과가 조명이었는데, 사실 그걸 감안하면 조명 활용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무대 위 아래 둘레를 돌면서 빛나는 고리가 혜성을 연상시키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The Duel>에서 클럽처럼 번쩍번쩍 하던 조명, 오페라 장면의 색조명, 거대한 문 뒤에서 엄청나게 쏟아지는 조명 정도(마지막에 피에르가 그쪽으로 뚜벅뚜벅 나가는데 시력 안녕하실지 걱정됨)가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 넓은 무대를 다 비추면서 이 정도 효과를 내는 것만으로도 조명 과부하였을 수 있겠단 생각도 든다.
<The Duel>에서 갑자기 조명이 환해지면서 알록달록한 형광 아이템을 두르고 술잔을 부딪는 그 순간은 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음악이 계속 다양하게 변하고 이후 비트 위에 노래 부르고 하는 건 다 좋은데, 그 환호성과 함께 갑자기 밝아지는 조명과 어색한 소품들이 좀 낯설었다. 다른 장면들에서는 극 중 상황이 ‘19세기 러시아’라는 걸 강조하는데 이 장면은 그거랑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 같아서 그런가? 예컨대 <Letters>에서도 “In nineteenth-century Russia, we write letters(지금은 19세기 우리 쓰지 편지 쓰지)” 이런 가사가 있고, <The Abduction> 중간에는 아나톨이 다들 앉아보라고 하면서 “이건 러시아 전통”이라고 한다. 그 콘셉트와 조금만 더 결을 맞췄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Pierre & Natasha>에서는 거의 라레솔레(정확한 음X)를 반복하는 조용한 피아노 반주에 피에르와 나타샤의 노래만 얹어지는데, 덕분에 두 사람 이야기가 잘 들려서 좋았다. 조용하고 두 배우님 발음도 너무 정확해서 가사도 감정도 잘 전달되었다.
<The Great Comet of 1812> 사실상 내가 극장을 나오면서 만족스러웠던 이유의 반쯤 된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가창력이 돋보이는 노래가 없다니, 고음이 필요하고 포효하는 노래가 아니어도 가창력은 잘만 돋보이더라... 이건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하고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스피커를 거치지 않은 목소리가 그 자체로 크지 않은 극장을 꽉 채운 느낌. 그때 나는 생각했다. 홍광호 배우님이랑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배우님이 동요를 부르신다고 해도 나는 들으러 가야겠구나...
인물과 서사에 대해: 피에르와 혜성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등장인물만 오백 명이 넘는다는 장편 소설이다. <그레이트 코멧>은 그 중 아주 일부를 다루고 있는 셈인데, 안드레이와 약혼한 나타샤가 전쟁 때문에 안드레이와 떨어져 있는 사이 아나톨에게 반해 사랑의 도피를 계획하지만 실패한다는 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의 벼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다양한 등장인물이 있고, 또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그것들이 짧게라도 다뤄지기 때문에 철저하게 어느 한 인물 중심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건 나타샤의 감정이고, 관계도의 중심은 오히려 아나톨 정도 되는 듯하다. 왜냐하면 피에르와 나타샤가 직접 만나는 건 마지막 잠깐인 반면 아나톨은 피에르와도 붙고 나타샤와도 붙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뮤지컬의 영어 원제는 <Natasha, Pierre & the Great Comet of 1812>다. 줄거리에 따르면 나타샤가 중심인 건 알겠는데 안드레이와 아나톨도 아니고 피에르랑 혜성은 대체 뭔가, 하는 생각이 드는 제목이다. 이 뮤지컬은 나타샤 중심의 서사로 흘러가지만, 소설에서 주인공 격인 인물은 아무래도 피에르인 듯하다. 피에르가 “그 어느 누구도 위인이 아니야. 역사의 파도에 휩쓸릴 뿐 다 똑같아.”(<Letters>)처럼 종종 노래로 드러내는 시대적 고민이나 통찰 같은 것들을 보면 소설을 이끌어가는 사색하는 인물이 바로 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피에르와 혜성이 나타샤의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뮤지컬에서도 중요한 이유는 원작에 따르면 결국 나타샤가 결혼하는 남자 역시 피에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레이트 코멧>의 서사는 어떻게 보면 나타샤와 피에르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그 첫 단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보편적인 로맨스물 문법이라면 적어도 둘이 연애하거나 약혼하는 부분까지는 보여줬겠지만, <그레이트 코멧>은 피에르가 사랑을 느끼는 장면, 그마저도 ‘사랑’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에서 막을 내린다.
돌아본다 좋은 사람으로 살았나? 충분히 사랑했나? 바라본 적 있나 저 하늘을 달빛과 별들을 난 왜 보지 않았나
아직 잠든 거야 사랑하기 전엔 우린 잿더미 속 잠든 아이 사랑에 빠지면 깨어나 천사들도 눈물 흘리지 오늘이 나의 끝이라면 난 잠든 채 죽네
(...)
아직 잠든 거야 사랑이 내게 없으니 난 준비 됐어 다시 깨어날
깨고 싶어 난 이대로 죽을 순 없어 깨고 싶어 난 신이여 내가 잠들지 않게 날 깨워주소서 신이여 내가 잠들지 않게
- <Dust and Ashes> 일부
마지막 곡, <the Great Comet of 1812>를 사랑의 확인으로 읽을 수 있는 근거는 1막의 마지막 곡 <Dust and Ashes>에서 찾을 수 있다. 깨어나고 싶지만 지금 자신은 잠들어 있다고 하는 피에르는 그 이유가 자신에게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랑에 빠지면 깨어나 천사들도 눈물 흘린다고 한다. 그리고 2막의 마지막, <the Great Comet of 1812>에서 피에르는 눈물 흘리면서 하늘을 보고 혜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피에르와 함께 노래 부르는 코러스는 마치 천사들의 노랫소리 같다.
저 드넓은 창공 눈물 너머로 펼쳐져
(코러스) 그 한가운데로 넓은 길과 광장 너머로 둥글게 흩뿌려진 저 별들 속에 위대한 혜성 찬란하게 빛나는 혜성 밝아오네
(...)
저 눈부신 별 멀리 돌고 또 멀리 돌고 또 돌아와 순간의 속도 넘어 무한의 공간 지나 날아오다 날 비춰! 지금 여길, 찾아온 듯 날 위해
-<the Great Comet of 1812> 일부
1막에서 그렇게 어둠 속에서 잠든 자신을 노래했기 때문에, 별과 혜성으로 환히 빛나는 밤하늘 아래서 고양된 감정으로 부르는 이 마지막 노래는 마치 <Dust and Ashes>와 연결된 듯, 그러면서 대조되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멀리 돌고 돌아 날 비추는 별’을 듣자마자 여러 사람과 감정 사이에서 헤매고 방황하다가 피에르에게서 위로받은 나타샤를 떠올렸다. 안드레이는 나타샤의 방황을 용서하지 못했지만, 피에르는 혜성이 먼 길을 돌아온 것을 알면서도 드디어 자신이 분명한 사랑을 느꼈음에, 사랑으로 깨어났음에 환희하는 것이다.
피에르가 중요한 인물인 건 틀림없지만, 뮤지컬에 드러나는 표면적 서사에서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다. 피에르가 중심인물임을 인지시키려는 노력은 늘 무대 중심에 있는 피에르의 위치나 <Prologue>의 시작, “라즈 드바 뜨리!”를 외치며 노래를 이끄는 대장(?) 같은 역할 등을 통해 알 수 있지만, 그래도 워낙 여러 캐릭터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극인 데다가 주요 스캔들의 대상이 나타샤와 아나톨이다 보니 피에르의 존재감은 자칫하면 묻혀버리기 쉽다. 그래서 나는 피에르 역을 홍광호 배우님이 맡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피에르가 강한 존재감으로 중심을 잡아주지 못하면 피에르의 고백으로 끝나는 뮤지컬의 서사가 생뚱맞고 당황스럽기만 할 것이다. 양적인 비중이 크지 않더라도 한 소절 한 소절의 흡인력과 무게감이 중요한 캐릭터인 것 같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뮤지컬 내내 접점이 없던 피에르와 나타샤가 극이 끝나기 직전 만나서 그렇게 진지하고 낯간지러운 고백(“만약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잘난 남자였다면, 그리고 –결혼 안 한- 자유로운 몸이라면 지금 당장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의 손과 사랑을 갈구할 것입니다.” 이런 식이었는데, 유일하게 가사가 아닌 대사로 전달되는 부분)을 하는 게 갑작스럽게 느껴지긴 한다. 그 괴리를 감정적으로 수습해주는 게 앞서 언급한 피에르의 두 노래인 거고.
<Prologue>에서는 각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표적인 특징을 간단하게 설명해준다. 한명 한명 핀 조명을 받으면서 같은 소개와 동작을 반복하는 게 꼭 책의 첫 장 등장인물 소개란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책을 막 펼친 것 같은 기분. 그리고 그 인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소개되는 게 바로 나타샤다.
<Prologue>에서 언급되는 나타샤의 특징은 어리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타샤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나타샤가 사랑스럽다고 적어도 한 번씩은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본인도 사람들이 다 자기를 좋아하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아나톨이 자기에게 반했다는 것도 금방 깨닫고.
나타샤는 무도회장에서 아나톨과 키스한 뒤 그를 사랑하겠다고 하고 이후 사랑의 도피를 계획한다. 뭘 도피까지 하나 싶기도 했는데, 이 결정의 용감함과 무모함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타샤와 안드레이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리야D는 나타샤와 안드레이의 약혼을 “러시아 최고의 조합”이라고 말한다. 극 중 호칭에 따르면 나타샤의 가문은 백작, 안드레이 가문은 공작 지위임을 알 수 있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물을 한 편이라도 봤다면 대충 어마어마한 귀족들인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브로드웨이 ost에서는 나타샤가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과 마리를 각각 ‘prince’, ‘princess’라고 부른다.) 그래서 사교계에서도 이 약혼은 큰 이슈였던 것 같다. 사교계에 데뷔한 나타샤는 사람들이 다 자기를 쳐다본다고 하는데, 이건 나타샤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그’ 소문난 약혼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약혼 어쩌구 쑥덕대는 대사가 있다.) 그러니까 나타샤는 안드레이를 사랑했을 뿐이라도 약혼은 엄청난 가문들 사이 약속이 되어버린 셈이고 그걸 깨뜨리는 건 귀족사회에서 상당한 타격이었을 것이다.
나타샤와 안드레이의 사랑이 더 이상 두 사람 감정에 관한 문제만은 아니라는 게 나타샤가 공작가에 방문했을 때와 <No one else>라는 노래를 통해 잘 드러난다. 비록 공작이 결혼을 반대하고 안드레이는 전쟁터로 떠났지만, 안드레이의 약혼녀로서 나타샤는 곧 안드레이의 가족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상황인데 공작도 마리도 나타샤를 별로 안 좋아하고, 나타샤도 그들을 좋아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그 뒤에 나타샤가 부르는 <No one else>의 “단 둘이서”라는 말에는 우리 둘‘만’ 있을 때 정말 행복했는데 정작 지금은 사랑하는 안드레이는 없고 꺼림칙한 그의 가족들이랑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참담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안드레이가 떠난 뒤 나타샤는 그를 그리워하는 동시에 그가 무사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산다. 안드레이가 피를 뿜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하고, 거울에 촛불을 비추면 보인다는 남자가 쓰러져있다며 안드레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초조해하기도 한다. 그렇게 불안함과 외로움을 견디고 있을 때 바로 곁에서 가까이 다가와 사랑한다고 끈질기게 구애하는 잘생긴 남자가 있었으니 그게 아나톨이었다. 어리고 불안한 나타샤는 불확실한 사랑 대신 확실한 사랑을 택한 것뿐이다.
이 뮤지컬은 나타샤를 중심으로 보면 과거의 사랑, 현재의 사랑, 미래의 사랑이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하고 있다. 어떤 장면이었더라 나타샤의 뒤로 실제 안드레이와 아나톨, 피에르가 교차하며 지나가는 순간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촛불을 비추면 미래를 보여준다는 거울에서 희미한 남자의 실루엣을 보는 대목에서(이때 거울 뒤에는 피에르가 위치함) 나타샤의 삶이 안드레이, 아나톨, 피에르로 대표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타샤가 안쓰러웠다. 누군가와 결혼하는 것 자체가 미래인 삶이니까 사랑이 배반당한 게 독약을 먹을 이유가 되는 거고, 자기 인생은 이제 끝난 거 같다고 말하는 게 진심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피에르의 갑작스럽고 뻣뻣한 고백이 나타샤에게는 위로가 되는 거고... 피에르에게 작게나마 위로를 받은 나타샤는 어떤 생각이었을지, 만약 뮤지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 피에르가 아니라 가장 격렬할 감정의 변화를 겪고 극 마지막에 도달한 나타샤였다면 어땠을까? 원래 흐름의 균형과는 많이 달라지더라도, 좀 더 한 인물에게 집중된 완결된 서사란 느낌은 강해졌을 것 같다. 그럼 이 뮤지컬을 혼란스럽게 느끼는 관객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재작년 가을 이후 처음 본 뮤지컬이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즐거웠다. <그레이트 코멧>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되기 위해 철저하게 깎이고 매듭지어졌다기보다 더 길고 복잡한 이야기의 일부를 그런대로 잘 갈무리해 보여주려고 한다는 느낌에 가깝다. 호불호가 심하게 나뉘는 것도 이런 특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60분의 시간동안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깔끔한 하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운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일단 볼거리와 들을거리가 주는 흥취를 즐기면서 만족하고 이야기의 의미는 오래 되새기면서 느껴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레이트 코멧>은 주요 등장인물들도, 객석도, 배우들의 동선도 산만한 듯 흩어져 있다는 점에서 한번에 깔끔히 정리되어 소화된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처음의 당황스러움이 지나고 노래를 반복재생 할수록 더 좋아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