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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 - 멸망 속에서 길을 찾는다면

by 끄적고구마 2022. 4. 1.

 

인터스텔라(2014)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주연 매튜 맥커너히(쿠퍼 역), 앤 해서웨이(브랜드 역), 마이클 케인(브랜드 교수 역), 제시카 차스테인(머피 역)

※ 스포주의 ※

 


개봉 당시 극장에서 조금 졸면서 별 감흥 없이 보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제 개봉한 지 8년이 흘렀다. 다시 본 인터스텔라는 정말 재미있었다. 예전엔 별로 공감되지 않던 부분들에서 감동받는 스스로를 보며 그 사이에 나이가 들긴 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1. '종족' 인간

인간이 만든, 인간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매일 다른 인간들과 부대끼면서 개체가 아닌 종족으로서 인간을 생각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인류 멸망 앞에서 인간이라는 ‘종족’으로 돌아가는 <인터스텔라>의 인물들이 흥미로웠다. 병충해로 식량난은 점점 더 나빠질 뿐이고 식물이 자라지 못해 산소도 줄어들고 있는 지구에서 NASA 소속 브랜드 교수는 두 가지 플랜을 제시한다. 플랜A, 웜홀 너머 후보 행성으로 지구의 인류가 이주하는 것. 플랜B, 5천 개 이상의 수정란을 옮겨 새로운 인류가 살게 하는 것. 중력방정식을 풀고 중력 문제를 해결하면 플랜A가 가능하지만, 실패하면 지구의 인류는 죽고 플랜B만 실행할 수 있다. 주인공 쿠퍼는 중력방정식을 반드시 풀겠다는 브랜드 교수의 약속을 믿고 적합한 행성을 찾기 위해 웜홀 너머로 떠난다.
나는 플랜B가 멸망 대책이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의 생존도 아니고, 가족의 생존도 아니고 같은 세대도 같은 행성도 공유한 적 없는, 같은 종족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연결점도 없는 존재를 우주에 남기면 인류는 멸망하지 않는다. 종족으로서의 인간은 멸망 앞에서 그런 계획을 세우는구나. 지금의 나에겐 조금 낯설지만, 나도 인류 멸망이 코앞이라고 실감하게 되면 그런 것에 희망을 걸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인간 사회에서 ‘나/우리’와 우주 속에서 갖는 ‘나/우리’의 크기는 많이 다를 테니까.
물론 영화 속에서도 모두가 플랜B 같은 범인류적 대안에 만족하지는 못한다. 일찌감치 플랜A의 희망을 버린 인물은 브랜드 교수뿐, 쿠퍼도 머피도 지구의 인류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쩌면, 브랜드 교수도 늙어 죽기 전에 멸망을 맞을 나이였다면 플랜A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쿠퍼는 어린 딸을 (곧 망해버릴) 지구에 두고 떠나게 만들었으면서, 자기는 딸을 우주로 보내고 지구가 망하기 전에 편히 눈 감다니. 한계에 부딪힌 과학자의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어도, 본인이 책임도 손해도 질 필요 없는 ‘안전한’ 계획이라 안주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2. 희망을 만드는 힘, 실현하는 원리

<인터스텔라>의 주제라고 하면 쿠퍼의 눈물 나는 부성애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길이 있다고 믿는 심지가 더 인상적이었다. 머피와 쿠퍼의 각별한 애정에 비해 가족 관계가 대체로 삼삼하고(왜 쿠퍼는 머피만 편애할까), 긴 여행 끝에 만난 머피와 쿠퍼가 담백하게 다시 이별한다(여행의 종착지가 머피-가족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주제를 ‘가족애’라고 정리하기에는 좀 아쉽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그냥 ‘사랑’일 것이다.
<인터스텔라>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건 지구로 돌아갈 수 없는 쿠퍼가 모스 부호로 ‘S T A Y’라는 메시지를 어린 머피에게 전달하는 장면일 것이다. 쿠퍼 입장에서 이보다 더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순간은 없다. 지구를 떠나온 모든 이유가 물거품이 된 상황이다. 지구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지도, 지구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결국 오랜 시간을 건너 블랙홀로 들어간 쿠퍼가 과거의 자신에게 절박하게 전하려는 말은 희망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가족을 구할 수 있을 거란 희망따위 버리고 딸 곁에서 함께 죽음을 맞으라고. 머피가 처한 상황도 비극적이긴 마찬가지다. 머피는 애초부터 아빠의 우주선은 돌아올 계획이 없고 지구에 남은 자신들을 위한 계획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브랜드 교수의 거짓말로 수십 년이 지났고 그동안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더 가까워졌다.
그대로 쿠퍼의 몸이 찢어지고 모래폭풍이 지구를 삼켜 모든 게 쾅-하고 망해버릴 것 같은 상황. 그런데도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쿠퍼와 타스는 블랙홀 안에서 알아낸 특이점 정보를 모스부호로 머피의 시계 초침에 싣고, 머피는 중력이론을 완성해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한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 쿠퍼와 머피는 절망 속에서 길을 만들었다. 그들이 길이 있다고 믿지 않았더라면, 길을 찾고 있지 않았더라면 쿠퍼는 그곳에서 머피에게 정보를 넘길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고 머피는 초침의 이상한 움직임을 그저 시계가 오래되어 고장 난 탓으로 여겼을 것이다. 길을 만들 수 있다고 믿어서 희망이 생겼다. 기적 같은, 그러나 찬란하다기엔 아주 실낱같은 희망.
그리고 이 실낱같은 희망을 실현하는 원리는 사랑이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나머지 수많은 책을 선택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선택과 집중의 결과다. 그리고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머피가 수많은 사물과 현상 속에서 쿠퍼가 보내는 표지를 발견하도록 이끈 것이 아빠에 대한 사랑이듯이.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에요.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믿어보기는 하자고요.

 


놀란 감독의 영화는 여러 번 봐도 재미있는 게 큰 특징인 것 같다. 장면 장면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있는 느낌이라, 전체 내용을 알고 보면 개별적인 것처럼 보이던 두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인터스텔라>의 음악이 좋았다. 쿠퍼와 머피 사이 애절함을 멜로디컬한 음악으로 풀지 않아서 상황의 긴박함과 놀라움이 더 입체적이고 황홀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배경음악이 스산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공포영화에 많이 쓰이는 교회 오르간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신비하면서 공포를 일으키는 음악이 우주라는 분위기를 잘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듄> 볼 때도 긴장감 조성하는 음악을 참 잘 쓴다고 생각했는데 <인터스텔라>와 같은 음악감독- 한스 짐머였다.